용돈기입장 대신 화이트보드 한 칸을 줬습니다
넉 달 동안 굴린 생활습관표 이야기를 지난 글에 적었습니다. 규칙 하나로 버틴 표였고, 패널티 칸은 넉 달 동안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습니다.
그 글 끝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 칸이 비기 시작한 것은 표가 지겨워졌을 때가 아니라 보상이 시들해졌을 때였다고. 이 글은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열기가 식은 것은 규칙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두 달쯤 지나면서 표가 조금씩 헐거워졌습니다.
아이들이 표를 미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항목을 못 지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체크하는 손이 느려졌습니다. 저녁에 표 앞에 서는 일이 하루 일과가 아니라 하루 숙제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나중에 밥상에서 아이 입으로 나왔습니다.
일주일 내내 스무 개 항목을 지켰는데 돌아오는 것이 삼천 원, 오천 원, 그리고 엄마 쿠폰 한 장이었습니다. 아이들 기준에서 그것은 적었습니다. 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표를 굴릴 이유가 얇아진 것이었습니다.
그냥 올려줄 수는 없었습니다
보상을 올리는 것은 쉽습니다. 주간 보상을 만 원으로 올리면 됩니다. 그런데 그러면 다음 달에 또 같은 대화를 하게 됩니다. 올려 준 보상은 금방 기준선이 되고, 기준선은 다시 얇아집니다.
그래서 밥을 먹으면서 아이들과 협상을 했습니다. 결론은 이랬습니다.
보상 액수를 올리는 대신, 보상을 벌 수 있는 통로를 하나 더 연다.
하트와 별
통로는 엄마와 보는 저녁 시험이었습니다.
영어 학원에 다니고 있었지만 학원에서 이번 주에 배운 것을 묻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숙제가 됩니다. 대신 한참 전에 배웠던 초기 내용부터 되짚는 복습으로 문제를 냈습니다. 이미 아는 것에서 시작하니 시험이 벽이 아니라 게임에 가까웠습니다.
- 하루 1문제에서 10문제 사이. 정해진 개수는 없었습니다
- 맞히면 하트 1개
- 아깝게 틀리면 별 1개
- 별 2개는 하트 1개로 바꿉니다
- 엄마 쿠폰은 하트 3개
아이가 틀렸을 때 "땡, 틀렸어"라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반복되면 시험은 자기가 뭘 모르는지 확인당하는 자리가 됩니다. 아쉬워하는 것은 괜찮지만 속상해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아깝게 틀린 문제에는 땡 대신 별을 줬습니다. 아까웠던 것도 절반은 값이 됩니다. 틀림이 처벌이 아니라 절반의 성과가 되는 순간, 아이는 다음 문제를 피하지 않습니다.
장부는 화이트보드였고, 쓰는 사람은 아이였습니다
하트가 쌓이기 시작하면 어딘가에 적어야 합니다. 우리는 통장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표를 붙여 둔 화이트보드의 빈 자리가 그대로 장부가 됐습니다.
용돈기입장을 사 줄까 하다가 그만뒀습니다. 칸이 정해진 공책은 결국 어른이 검사하는 물건이 되고, 검사하는 순간 아이 것이 아니게 됩니다. 대신 화이트보드의 빈 면 한 칸을 줬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적는 사람이 아이였다는 것입니다.
시험에서 하트를 받으면 아이가 직접 보드마카를 들고 자기 숫자를 고쳤습니다. 쿠폰을 쓰거나 용돈을 받으면 그만큼 알아서 계산해서 다시 적었습니다. 어른이 검산해 준 적이 없습니다. 통장을 자기가 쓰는 셈이었습니다.
지난 글에서 표의 체크를 아이가 직접 하게 한 것이 스티커판과의 차이라고 썼습니다. 장부도 같습니다. 판단하는 손과 기록하는 손이 자기 것이면 숫자를 보는 이유가 달라집니다. 남이 관리해 주는 잔고는 남의 것이지만, 자기가 적은 잔고는 자기 것입니다.
100점은 문턱이 아니라 바닥입니다
여기에 조건을 하나 걸었습니다.
- 주간 점수가 100점 이하면 패널티
- 엄마 쿠폰은 100점을 넘겨야 살 수 있습니다. 즉 101점부터
100점은 상을 받는 선이 아니라 패널티를 안 받는 선입니다. 보상은 그 위에서만 열립니다. 이 한 칸 차이가 완충 역할을 했습니다.
쿠폰을 얻는 방법 자체도 이때 바뀌었습니다. 그전에는 115점을 넘긴 주에 다섯 가지 중 하나를 고르는 식이었는데, 하트가 생긴 뒤로는 하트 3개로 사는 것이 되었습니다. 상으로 받던 것이 사는 것이 되면 약해 보이지만 반대였습니다. 고르는 일은 한 주에 한 번뿐이지만, 사는 일은 하트가 있는 만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트로 점수 5점을 살 수 있게 했습니다. 점수가 조금 모자란 주에도 아이는 패널티를 받는 대신 자기가 번 하트로 메울 수 있었습니다. 면죄부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그 하트는 영어 문제를 맞혀서 번 것입니다. 점수를 사려면 결국 공부를 해야 합니다.
쿠폰은 일주일에 한 종류씩 한 장만 살 수 있었습니다. 중복 구매는 안 됐습니다. 그래서 하트가 쌓이면 살 수 있는 쿠폰을 전부 사고, 그러고도 남는 하트가 점수로 갔습니다.
시험 개수는 정산일을 보고 정했습니다
규칙적으로 매일 낸 것은 아닙니다. 피곤한 날은 한 문제만 냈고 아예 안 낸 날도 있습니다.
기준은 금요일이었습니다. 표의 점수를 금요일 저녁에 계산했으니, 그 며칠 전이 마지막으로 손쓸 수 있는 시점입니다.
그래서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아이들 점수를 확인했습니다. 이번 주가 아슬아슬해 보이면 그때부터 시험 문제를 늘렸습니다. 하트가 10개를 넘을 때까지 냈습니다. 하트 10개면 쿠폰 세 장이거나, 모자란 점수를 메우고도 남는 양입니다.
아이들도 그렇게 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금요일에 점수가 모자랄 것 같으면 아이 쪽에서 먼저 시험을 보자고 했습니다. 패널티를 피할 수단이 자기 손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 제도에서 어른이 한 유일한 일입니다. 규칙을 지키는지 감시한 것이 아니라 규칙 안에서 스스로 유리해지는 방법을 열어 준 것입니다.
달라진 것
기대한 것은 표를 다시 열심히 체크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온 것은 조금 달랐습니다.
아이가 먼저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무슨 시험 봐요?"
"어떤 문제 나와요?"
책상에 앉아 스스로 공부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그림은 우리 집에 없습니다. 대신 범위를 알면 그것만 집중해서 봤습니다. 시킨 공부가 아니라 먼저 물어본 공부였습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이 방식으로 꽤 오래 시험을 봤습니다. 그동안 패널티는 여전히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해보려면
종이와 펜, 그리고 화이트보드 한 장이면 됩니다. 앱도 스티커도 필요 없습니다.
- 보상이 적다는 말이 나오면 액수부터 올리지 마세요. 올린 액수는 다음 달의 기준선이 됩니다. 올리는 대신 버는 통로를 하나 더 엽니다.
- 통로는 이미 하고 있는 것에서 고릅니다. 우리는 영어였지만 무엇이든 됩니다. 다만 오늘 배운 것을 묻지 마세요 — 그러면 숙제가 됩니다. 한참 전에 배운 것부터 되짚으면 시험이 게임이 됩니다.
- 아깝게 틀린 것에 절반의 값을 줍니다. 이름은 아무거나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틀림이 처벌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 하나로 아이가 다음 문제를 피하지 않습니다.
- 장부는 아이가 씁니다. 화이트보드 빈 자리면 충분합니다. 받은 것도 쓴 것도 아이가 직접 고치게 두세요. 어른이 검산하는 순간 그 잔고는 아이 것이 아니게 됩니다.
- 패널티를 피하는 선과 상을 받는 선을 한 칸 벌려 둡니다. 같은 선에 두면 아슬아슬하게 넘긴 주가 상을 받는 주가 되고, 그러면 기준이 흐려집니다.
- 모자란 점수를 메울 길을 남겨 둡니다. 단, 메우는 재료는 스스로 번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면죄부가 되지 않습니다.
- 정산일 이틀 전에 확인합니다. 우리는 금요일이 정산이라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봤습니다. 모자라 보이면 그때 스스로 유리해질 기회를 늘려 줍니다. 정산 당일에 알려 주는 것은 통보이고, 이틀 전에 알려 주는 것은 기회입니다.
3번과 7번이 핵심입니다. 나머지는 취향대로 바꿔도 되지만, 틀림에 값을 주는 것과 정산 전에 만회할 시간을 주는 것 둘이 빠지면 보상 제도는 두 달을 못 넘깁니다. 우리가 그 두 달을 먼저 겪었습니다.
보상이 적다는 말은 표가 실패했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표가 제 할 일을 다 해서 다음 것이 필요해졌다는 신호입니다.
그리고 몇 달 뒤, 이번에는 표 자체가 모자라기 시작했습니다.